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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일지/book

정리하며 설레기

설레인다...

2010년 중반까지 멋모르고 사용했던 흔한 단어.

작성한 보도자료에 맞춤법 지적을 받고,

그제서야 포탈 검색을 해보니,

십수년간 사적인건, 공적이건 남용했던

"설레이다"가 잘못된 표기법이었던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머저리 같이.

2010년 중반 이후로 이 단어를 사용할 때

표준어인 설렌다. 라고 말하고 설렌다. 라고 쓴다.

 

그런데, 실은 많이 아쉽다.

그 의미, 뜻 자체가 무언가 감수성을 자극함에도 불구하고

뭔가 뚝 잘라낸 듯한 간결한 냉정함이 서운하다.

웬지 "설렌다"보다는 "설레인다"라는 표현이

더 큰 여운을 주고 좀더 많이 설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순한(?) 그러나 중요한 표준어, 맞춤법들...

국문과와 수학과를 고민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100% 국문학도로 보다 심도깊은 형식과 내용으로 무장하고 싶다. 

 


 

 

1년에 한두 번, 혹은 서너 번 신간을 포함한 읽을만한 도서를 1회당 10권 미만으로 구매해 본다.

한동안은 인터파크, 예스24, 그리고 교보문고의 바로드림 서비스를 어쩌다 이용한다.

구매 시기는 보통 매우 매우 이슈가 되어, 굳이 검색한 것이 아닌데도

포탈의 메인 기사 한 줄을 우연히 보고난 후, 그 신간을 포함하여 지나간 몇몇 권을 구하는 형태이다.

 

이번에는 사실, 대부분이 그러하듯, 무라카미 하루키의 3년 만의 장편소설 신작이라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책이 궁금했다.

오랜만의 도서구매.

제목들을 훑고, 간단한 소개글을 지나 장바구니에 하나씩 담기 시작하여,

몇몇 권의 주문을 완료했다.

 

퇴근 길 바로드림 서비스로 직행.

인터넷 가격으로 구매하고, 한두 시간 후면 지나는 길에 픽업할 수 있다는 장점.

서점에서 주구장창 앉아 책 읽는 것이 좋기도 하고 그랬던 적도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 많던 시간들도 서점에 가면 갑자기 시간이 촉박한 듯 쫓기고,

아무리 직전에 배불리 뭔가를 먹고가도 여기저기 책장 밑에 걸터앉아 자리잡고 나면

앉은지 10분이 채 안되어 배에서 꼬르륵 꾹꾹 천둥소리가 요동쳐 불편하다.

요상한 심리상태와 뱃속 소리 덕분에 지금의 내겐 바로드림이 가장 적합하다.

 

소설, 에세이, 자기계발서.

아주 예전 학창시절엔 칭찬받는 언니따라 위인전 독파. 누구나 읽던 하이틴 로맨스. 소설들.

그러고보니 오히려 인생길 첫발에 큰 도움을 받을만한 자기계발서들을 대학, 사회 초년생

- 그 20대에는 전혀 읽지않고 외면했던 것 같다. 소설들과 그럴듯해보이는 시집들.

살만큼 산(?) 지금에야 소설보다는 자기계발서를 보며 옳다그르다를 스스로 판단하는

불평불만자가 되있는 현실은 참 씁쓸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구매하고 다시 내다팔고 누군가에게 줘버리다보니,

내 수중에 남아있는 계속 함께 할 책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유일무이하게 책장 혹은 선반을 지키고 있는 니나 부슈만 언니 이야기 빼고는.

나머지는 언제 내쳐질지 나도 내 맘을 모르겠다. 

 


 

 

이 길고 긴 뭔소린지 모를 도서구매와 관련된 갖가지 생각들은...

오늘 마지막으로 장바구니에 담았던 하찮은(?)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구매할까말까를 고민하며, 샀다가 맘에 안들면 좀 보고 다시 되팔자...라고 생각하며...

내 공간 내가 그냥 정리하면 되지 굳이 정리방법 책까지 구입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생각하며...

 

그런데, 오늘 받아 온 도서들 중

이상하게도 후광을 발산하며, 제일 먼저 들춰 읽어달라고 말을 거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십년 넘게 정리되지 못한 내 방.

정리하다 포기하고 다시 더러워지고, 뭔가 버리고 정리해도 제 자리인 이 방을,

다시 정리해보려고 이틀 전부터 조금씩 뒤집어 엎고 있기 때문에

그 버거운 절실함을 이 책이 알아챈 것일까.

마음 속 깊숙히 자리한 정리 및 쾌적한 취침 환경에 대한 열망이 나를 그리로 이끈 것일까.

정리를 마치고 청결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화제의 도서들을 읽고 싶은 그런 마음...?

그러저러한 이유로 이 책을 가장 먼저 집어 든다. 나, 좀 웃기다.

 

 


 

 

 

일본 여자가 쓴 책인 것 같다.

10장 남짓 읽고 있다.

생각보다 쉽게 읽힌다.

전체 내용을 읽고 남의 정리 방법, 정리 지침을 그대로 따라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행해 온 고유의 방식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쾌하고 간결하다.

"설레느냐?"

바로 남기느냐 내다 버리느냐 하는 정리의 기준이다.

 

남의 책 - 특히 자기계발서 류를 읽고나면, "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건 이미 아는 내용인데..."라는 오만함이 어느 구절에서건 한 권당 한 번 이상씩은 샘솟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10장 남짓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감사하게 된다.

 

- 나는 지금 정리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 정리하며 설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실 첫 10장 이내에서 한 권의 책을 간파하기는 쉽지 않다.

기승전결이 필요한 소설 장르가 아니니까 혹여 가능한 부분은 있을 수 있겠다.

물론, 나는 혹시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겠다만은,

남김과 버림의 기준을 "설레다"로,

설렘의 등급 분류를 "애매하게 설렌다면 일단은 당당하게 남겨라"

명확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을 구매한, 읽는다는 그 의의는 충분한 것이라 그래서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 음악CD 정리가 한참 중인 나는,

CD 한 장, 한 장에 깃든 기억들에 대한 오랜 설렘을 이미 경험 중이었기에

그 설렘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되새김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이 CD를 들을 때 그랬었지, 이 CD를 어디서 어떻게 샀던거였지, 이런 일이 있었지,,,

들에 대한 설렘의 기억. 바로 얼마 전에 그런 새벽녘의 설렘을 맛보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 책 <버리면서 채우는 정리의 기적>은

지금의 내 현실과 나의 최근 경험 속에 파고들어 적어도 내게는

뇌리를 스치는 "설레임"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 웬지 여기에는 표준어인 "설렘"보다는 잘못 혼용된다는 "설레임"이 더 적합하게 강렬한 것 같다.

적어도 나한테서는 관심 유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게 된 것 같다.

 

물론 11장 넘어서부터는 뭔가 다른 얘기가 더 있을 수도 & 지루할 수도 있지만,

So far, So Good이다. 너무 시기상조의 판단인가? 그래봤자, 이미 구매한 것이고,

나는 내일도 마저 읽어낼 것이고,

그리하여 이를 계기로 나를 설레게하는 것들만 정리해내어

마침내 쾌적한 공간에서 숨을 쉬어낼 수 있는 날은 오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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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믿으며

오늘도 조금씩 설렘을 남기고, not 설렘을 정리해나간다.